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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임동진 목사의 인생 3막

  • hansewan
  • 조회 : 2789
  • 2016.11.27 오전 01:56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니 가장 무서운 게 포기와 절망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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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에서 목사로, 다시 배우로 인생 3막에 들어선 임동진은 “이제야 삶이 뭔지 알 것 같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그는 “‘난 이제 끝이다’라는 생각만큼 무서운 병명은 없다”고 강조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목사에서 배우로 돌아온 임동진 

100세 시대, 인생의 ‘하프 타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가 화두가 되는 때에, 이미 인생 3막에 들어선 이가 있다. 배우에서 목사로, 그리고 다시 배우로 돌아온 임동진(72)이다. 1964년 연극 ‘생명’으로 데뷔하고, 1968년 TBC 공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의 연기 인생은 벌써 52년이다. 그 사이 7년은 오로지 목회자로서 헌신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기적적으로 회복한 후 ‘덤’으로 얻은 삶. 예기치 못했던 인생 2막이었다. 2014년 목회에서 은퇴한 그는 다시 연기자로 돌아왔다. TV 드라마로, 연극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3막을 살고 있다. 연극 ‘아버지의 선물’에 출연 중인 배우 임동진을 최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건강한 사람보다 더 큰 에너지 발휘”= 2014년 목사 은퇴 후 임동진은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으로 연기자로서의 복귀를 알렸다. 연극도 벌써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지난 5월 모노드라마(1인극) ‘그리워 그리워’로 무대에 섰다. 두 달간의 장기 공연이었고, 지금 출연 중인 ‘아버지의 선물’은 지난 10월 1일 개막해 12월 31일까지 석 달간 계속될 예정이다. 체력적인 부담은 없을까. 아무래도 더 젊고, 또 쓰러지기 전에 활동하던 때와는 다를 것 같다. “지금 저는 소뇌의 30%밖에 쓰지 못하고, 보통 사람 건강의 반에도 못 미치는 상태예요. 건강이 안 좋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고, 항상 죽음을 의식하며 생활하다 보니 초월적인 힘이 나오는 것 같아요.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이나 의사들이 전부 깜짝 놀랄 정도예요.”  

2000년 갑상선을 다 제거한 그는 2001년 심각한 뇌경색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병원에선 가족들에게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가 3일 만에 의식을 찾자, 이번엔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23일 만에 절룩거리며 병원에서 걸어 나왔다. 기적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신의 은총’이다. 그다음엔 자신과의 싸움이 이어졌다.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재활을 시작한 것. 12시, 1시, 2시…. 한밤중에도 일어나 걷고 또 걸었다. 상태는 점점 호전됐고, 병원에서 타오던 약도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그러다 6개월에 한 번으로 줄었다. 그는 “예상과 달리 휠체어도 안 타고, 말도 어눌하지 않아 공연까지 할 수 있다. 주치의도 나 같은 경우는 처음 본다며 신기하게 여기더라. 내가 몸 바쳐 목회했던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임동진은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건 제한, 포기, 절망이다”고 말했다. “이제야, 이 나이에. 그리고 이러한 육체와 삶을 통해서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지요. ‘난 이제 끝이다’라는 생각만큼 무서운 병명이 없지요.”  

◇아들이 ‘목사 선배’…“아내는 내가 목사 된다고 하니 기뻐서 울어”= 임동진의 아들은 캐나다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다. 뇌경색을 딛고 일어나서, ‘두 번 산다’고 믿은 그는 아들을 뒤따라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연기 생활을 모두 접고 신학교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아들 같은 녀석들하고 공부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아들 자랑은 팔불출이라는데, 자랑 좀 하고 싶다. 내 아들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목사다”고 덧붙였다. “목회를 하겠다고 하니, 온 집안이 놀라워했죠. 제가 아프기 전에도 교회 장로였기는 했지만, 아들에게도 ‘목사는 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거든요. 아내는 기뻐서 펑펑 울었어요. 처가엔 이제 저까지 목사 사위만 셋입니다.”

임동진은 어린 시절 한국전쟁 폐허 속에서 먹을 것을 얻으러 처음 교회를 나갔다고 한다. 배가 고파 무당 자식도 교회를 나간다던 시대다. 그러다 20대엔 불교에 잔뜩 심취했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연예계에서도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유명했다. 배우 정영숙과 함께 만든 TV 연기자 기독신우회는 20년이 넘도록 건재하다. 임동진이 초대 회장이었다. “주일도 잘 지켰고, 새벽 기도도 열심히 했죠. 하지만 어느 정도 ‘보여주기 식’이 있었어요. ‘임동진 장로 신앙생활 평가’에 신경을 썼던 거죠.”  

2007년 목사 안수를 받고 경기 용인 자택 거실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개신교식으로 표현하면 교회를 ‘개척’했다. 2014년 교법대로 은퇴를 하고, 지금은 다른 교회에 평신도로 나가고 있다.

그가 세운 교회는 국내에선 비교적 교세(敎勢)가 작은 루터파 교회다. 본래 장로교회를 다녔으나 뒤늦게 신학을 하려는 그에게 문을 열어 준 게 루터신학대가 유일했다. “제가 마지막 ‘늙은’ 입학생이었어요. 루터신학대도 이제 나이 제한이 생겼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모든 게 하늘의 섭리였어요. 온전치 않은 몸으로, ‘여기서 죽겠다’는 생각으로 목회를 했지만 후회가 많아요. 제가 목사가 됐다고 하니, ‘방송으로 돈 많이 벌어 놓고, 성직자가 되다니 참 멋있네’라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있었죠. 그런데 목사는 아프고 상처 있는 성도들 앞에서 울어주고 기도해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말이죠.”

◇후배 연기자들에게…“배우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돼라”= 겉으로 보기에 그는 전혀 뇌경색을 앓았던 사람같지 않다. 공명이 큰 음성도 여전하고, 지난 7년간 목회를 해서 그런지 언변도 좋다. 침착하고 힘 있게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하지만 그는 “전부 밝힐 수는 없지만, 몸 상태를 알 수 있는 자각 증상이 꽤 있다”고 했다. “얼음을 올려놓은 듯한 진통이 있고, 한쪽 다리를 약간 절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들 ‘아픈 사람 같지 않다’고 해요. 배우로서 오래 훈련돼 있어서 그렇지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건데, 배우라는 건 여러 의미에서 ‘무서운’ 직업입니다.”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 여겨 목회자로서 인생 2막을 살고, 이제 배우로 다시 돌아와 3막을 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프지 않았으면 목회를 하진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연기 인생에 애착이 컸다. “연극이 또 하나의 신앙이라 생각했고, ‘나는 무대에서 죽을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죠. 연극으로 데뷔했고, 한창 인기 있던 시절 드라마 촬영으로 바빠도 꼭 무대를 병행했어요. 배우로서 갖춰야 할 힘과 에너지를 무대에서 키웠다는 게 맞습니다.” 

루터신학대를 비롯해 동아방송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했던 그는 늘 수업에서 ‘배우의 본질’부터 가르친다.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 그리고 넉넉할 우(優)가 만나 배우(俳優)가 된다. 돈과 권력이 있어야 넉넉하다고 여기는 보통의 사람을 뛰어넘는 게 배우 정신이라는 것. 그는 “나 역시 대선배들이나 은사들로부터 배운 거다. 늘 ‘배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돼라’고 하셨다. 이 직업이야말로 가장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노인네라 여기겠지만, 요즘 제작사들이나 연예기획사들이 히트하고, 스타를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걸 많이 보잖아요. 거기서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고요. 카메라 앞이나 무대 위가 아니라도 늘 삶이 배우 같아야 배우인 거죠. 사람을 초월해야 하는 거예요. 좀 가진 게 없어도 만족할 수 있는 정신…. 그렇게 사는 젊은 연기자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역시 다른 배우들과는 달라요. 나름대로 자기 몫을 차지하고 열심히 일하고. 그들을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지요.”

◇인생 3막에 이르니…“이제야 삶이 뭔지 알 것 같아”= 배우에서 목사, 그리고 다시 배우로 돌아왔다. 인생 2막이야 요즘 흔한 이야기가 됐지만, 3막은 쉽지 않은 여정이다. 임동진은 3막에 이르러서야 삶이 뭔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또,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단언했다. “결손가정에서 자랐고, 청년기엔 사건도 많이 일으키며 방황했어요. 아내를 만나서도 조율의 시간이 필요했지요. 아무리 사랑하고, 조건이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해도 세상 부부는 모두 하나가 되기까지 진통의 과정이 필요해요. 저 역시 그런 걸로 힘든 때가 있었죠.”  

신앙생활도 달라졌다. 과거엔 목적이 강했다면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놨다.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과 용서, 화해니까요. 예전엔 이런 걸 이뤄달라,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몸부림을 쳤어요. 지금은 그저 섭리를 믿지요. 늙는 게 슬프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늙을수록 인생의 가치가 살아나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고 봐요. 평온하고, 또 멋져지지요.” 

일흔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자신을 ‘멋지다’고 말하는 임동진. 연기 인생은 52년이고, 목회자로서 7년을 보냈다. 그가 일궈나가고 있는 인생 3막은 삶의 하프 타임을 준비하는 이 땅의 수많은 중년과 노년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다. 게다가 그는 ‘100세 시대’가 흔한 말이 되기도 전에 진작부터 하프 타임 운동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관련 단체 홍보대사도 많이 했지요. 노인 공동체에 강연도 자주 나가요. 이번 연극에도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중요한 건 뭐든 ‘일을 하라’는 겁니다. 우린 너무 일과 수익을 연결하는 데 익숙해요. 동네 마당을 쓸고, 낙엽을 긁어모아 태워줄 수도 있지요. 모든 게 세상을 더 아름답게 꾸미는 데 필요한 일들 아닙니까.”
그는 쉬면 아프다고 했다. “하루는 괜찮은데 이틀부터 몸살 기운이 와요. 노인 문화나 정책도 바뀌어야 해요. 유럽이나 선진국에선 나이가 들어도 소일거리를 주잖아요. 우리 사회는 뒷전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하죠. 자식들도 부모를 편하게만 모시는 게 효도인 줄 아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치매만 빨리 오고 건강이 나빠져요. 중요한 건 ‘일’입니다.”

그래서 7년의 목회를 마치고, 한동안 쉴 법도 한데 그는 공백 없이 다시 배우의 ‘일’을 시작했다. 요즘 더 바쁘다. 평신도로서 교회에서 맡은 일들이 있고, 불러주는 교회에 가서 인생 3막에 대한 ‘간증’도 자주 한다. 그는 “정말 열심히 다닌다”고 했다. “저를 보며 힘을 얻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강연 전후 표정이 달라진 사람들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인생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지요. 건강도 좋지 않은데, 이렇게 움직이고 무대에 오르고, 일하고 있는 제가 ‘산 증인’이지요.”

박동미 기자 p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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