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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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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은 일을 하고 있나요?

  • hansewan
  • 조회 : 2769
  • 2015.10.08 오후 12:02

죽어도 좋은 일, 하고 있나요?
[299호 은수연의 네버엔딩Q]
[299호] 2015년 09월 22일 (화) 16:55:45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 goscon@goscon.co.kr

죽어도 좋아, 그 일
몇 해 전 제주에 놀러갔을 때, 유명한 패러글라이더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친한 동생 덕에 제주도민인 그분과 함께 바닷가에 앉아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패러글라이더 함영민”이라고 찍힌 명함을 받아든 저는 이런 직업도 있나 싶어 신기했습니다. 도대체 뭔 일을 한단 말인가? 패러글라이딩은 레포츠 아닌가? 그게 직업이라고? 

   
▲ ⓒ신정원

물론 패러글라이딩을 가르치는 강사를 하기도 했지만 이분은 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패러글라이딩 묘기를 보이는 세계대회가 있다는 것도 그분 이야기를 듣고 알았습니다. 세계 대회에 나가 아크로바틱 패러글라이딩을 한다는 이야기도 듣고, 노트북 가득 담긴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여주는데 장난 아닌 작품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 높이에서 볼 수 있는 게 있어요. 그래서 각 방송국에서 촬영도 했었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아누타라는 섬에 가서 원주민들 촬영도 했었지.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하늘을 날다 죽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 싶어요. 더 일찍 패러글라이딩을 몰랐던 게 아쉬워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더 일찍 패러글라이딩을 배우고 싶다는 게 꿈이죠.”

운명처럼 패러글라이딩을 만나 직업을 아예 패러글라이더로 바꾼 삶을 마주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게 뭐 그리 좋다고. 비행기타면 안전하게 날아다닐 수 있는데 목숨 걸고 저럴까 싶었지만 부럽기도 했습니다. “날다 죽었으면 좋겠다 다시 태어나도 날고 싶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하던 그분 목소리가 참 행복해보였거든요. 

2013년 11월 해외 전지훈련을 떠난다며 이듬해 봄 유채꽃밭을 함께 날자던 함영민 님. 그 후 저는 그분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며칠 후 그분 소원대로 하늘을 날다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즈음부터 무슨 일이든 할 때 생각해보곤 합니다. ‘이 일 하다 죽어도 좋은가?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글쎄요. 극단적이지만 가끔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진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어떤 일을 할 때 한 번 더 고민하게 됩니다. 대충 밥벌이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뭐 거창하게 살겠다는 건 아닙니다. 죽어도 좋은 그 일, 죽기 전에 꼭 했으면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은 그 일을 찾고 싶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 일 하다 죽어도 좋다 싶은 그 일을 하며 살고 계신가요?

죽을 것 같아, 그 일
“아… 난 길을 잃은 거 같아. 뭐 하고 살아야하나 싶고, 노후 생각하면 너무 겁나.”
“언니, 저도 그래요.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지도 못하고, 저도 길을 잃은 거 같아요.”
“우린 뭘 하며 살아야 이런 고민을 안 할까? 그렇다고 우리가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퇴근 후 지친 저와 룸메이트는 집에 누워 가끔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끝을 맺지 못한 채 잠이 들곤 합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여행 좋아하고, 공원에 돗자리 펴고 하늘 쳐다보고, 멍 때리기 좋아하고, 책이나 읽고, 영화나 보고, 가끔 이렇게 노트북에 생각을 끄적이기 좋아하는 저에게 일, 작업은 보통 제가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죽도록 힘들기도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죽어도 좋아’는커녕 ‘죽을 것 같아’ 할 때가 있다니…. 어릴 때부터 일이란 어른들 입에 맨날 ‘아이구 죽겠네, 아이구 죽겠네’를 달고 살게 하던 것이란 이미지가 선명한 저는, 어느 새 저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아이구 죽겠네 싶은 게 일인가’ 하며 살아가게 될까봐 서글퍼지곤 합니다.

돈벌이 이상의 일
저는 어릴 적부터 직업에 대해 별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직업을 생각하면 단순 돈벌이 이상의 일을 하고 싶고,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은 게 꿈이었습니다. 버크민스터 풀러라는 사람은 “생계를 위해 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했다던데, 저는 그의 과격한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돈만 벌 목적이 아닌, 생의 이유와 기쁨이 있는 일을 하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대학 때부터는 이런 꿈에 하나님의 부르심, 소명에 대한 고민이 더해졌습니다. 더더욱 복잡해진 느낌입니다. 오스 기니스의 《소명》을 읽으며 “나사렛 예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라”는 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갸웃거리고, 도대체 어떻게 알아들어야하는 것인지 막연했던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소명을 따르는 삶은 ‘코람데오’(하나님의 앞에서)의 삶을 사는 것이며, 청중을 의식하는데서 돌이켜 오직 최후의 청중이요 최고의 청중이신 하나님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게 정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가족, 애인, 동료, 친구들까지, 내 주변인들이 청중 같아 신경 쓰이던데 어떻게 하나님만 중요하게 생각하며 조금은 거창해 보이는 소명을 따를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전도서 3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라고 하는데요. 그 소명이라는 걸 어렵사리 찾아 따른다면 일에 만족을 누리는 은총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일하는 게 저주 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죽을 것 같은 일이 아닌, 죽어도 좋을 만큼 만족하는 은총을 누리며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거창고 십계명’
생각해보면 저는 일이나 직업에서 거창하게 소명 찾는데 어떤 기준을 세워본 적이 없습니다. 재미, 보람, 단순 돈벌이 이상, 소명 등등 중구난방으로 나름의 원칙들을 덧대어 이리 되었나 싶어 서글퍼집니다. 일에 대한 고민을 하던 저는 너무도 유명하지만 현실감 전혀 없어 보이는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 십계명을 찬찬히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여기저기 소개되어 이 계명을 아시는 분들은 많으실 듯합니다. 저는 볼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이 계명을 따르면 얻는 것, 삶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요. 그리고 이 십계명을 따르면 ‘죽어도 좋은 그 일’을 찾을 수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돈도 승진도 장래도 명예도 없는 곳으로 가라고 하는데, 그곳에 가서 결국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궁금했습니다. 

어찌됐든 먹고 살려고 일하는데, 돈이 얼마나 중요한데, 밥벌이도 중요한 건데 첫 번째부터 돈이 적은 쪽을 선택하라니…. 쪼들리고 궁상맞은 삶이 보이고, 장래성이 없다 보니 노후 준비는 물 건너갈 수도 있고, 사회적 존경을 바라볼 수 없는 곳이라니요. 돈이 아니면 명예나 사회적 존경으로라도 보상되어야하는 거 아닌가 싶어집니다.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하는 직업을 선택해 가정불화가 일어나거나, 약혼자가 파혼을 선언할 수도 있겠고요.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면 죽는 건가 싶고, 왠지 모르게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망할 것 같아 별로입니다. 

이렇게 별로인 열 가지 기준으로 직업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고, 그냥 기준은 높이 세워두자는 의미에서 저리도 극단적으로 표현했나 싶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저는 문득 궁금했습니다. 거창고등학교에서 배운 학생들 중 위의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직업 선택 십계명을 배우며 자란 이들은 어떻게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직업선택 십계명’이라는 마음의 브레이크
고맙게도 저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작가 분이 졸업생들 삶을 따라가며 인터뷰한 책을 내셨더군요.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인데, 저자는 졸업생들이 살아내고 있는 삶들을 소개합니다. 대학 졸업 후 시골로 내려가 농부의 삶을 살아가는 졸업생들과, 월급이 더 적은 쪽을 선택해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졸업생들 삶을요. 능력이면 능력, 학벌이면 학벌, 성품이면 성품, 무엇 하나 빠질 것 없어 보이는 거창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눈물이 납니다. 조금 더 어릴 때 저도 이 기준을 알았다면 지금도 갖고 있는 조바심이나 엉뚱한 청중 의식이 좀 덜했을 텐데 싶어서요.

저자는 졸업생들 중에서 엄청난 부자나 뛰어나게 성공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방송국 PD라는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시베리아 호랑이 보호운동을 하는 사람, 어찌어찌 하다 문화재 복원 일을 하게 된 사람, 시골에 내려가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농사를 짓는 사람, 여러분들이나 저처럼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삶을 들려줍니다. ‘더 나은, 색다른 의미’를 찾고 있는 저의 미숙한 동동거림과는 다른, ‘직업선택 십계명’이라는 브레이크 하나씩을 마음 깊이 품고 선택의 순간들마다 진지하게 주저할 줄 아는 거창고 졸업생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네들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의 성공가도와는 다른 자기 삶에, 하는 일에 충만하게 만족하며 사는 삶을 엿봤습니다. 은총을 제대로 누리며 사는 삶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유하고, 부요하며, 제대로 자신의 청중을 인식하며 자기만의 무대를 누비는 주인공을 보았습니다.

성공이라고 속이는 수많은 것들에 속지 않고, 제 일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죽을 것 같은 일’을 하는지 ‘죽어도 좋을 일’을 하는지 헷갈립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며 살고 계신가요, 지금? 


은수연(필명)
9년간의 친족 성폭력 생존기를 담은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로, 2013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여행 작가, 하숙집 주인, 세련된 할머니, 드라마 작가, 밥집과 카페 주인 등 나이에 안 맞게 해보고 싶은 게 무지 많으며, 성실한 남편 만나 예쁜 딸이랑 아들 낳아 소박한 아줌마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서울에 많고 많은 혼자 사는 30대 여성 중 하나다. 복음과상황 2013년 5월호 “편들고 싶은 사람”에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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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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