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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아직도 그곳에 있느냐? (양인자)

  • hansewan
  • 조회 : 2275
  • 2018.12.14 오후 01:18

 

(2013년도 12월에 개인 SNS 소개했던 글인데 다시 뜨길래 따뜻한 마음으로 올려봅니다.)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눈물을 흘렸다. 
아래의 글을 목양실 책꽂이에서 우연히 꺼내 읽다가 그만 눈물을 흘렸다. 
오전에 사무실에 다시 나와 읽다가 또다시 눈물을 와락 쏟았다.
여러분과 양인자 작가의 글을 잠시 나누며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싶다.



아이들아 아직도 그곳에 있느냐?

양인자(작가)

어느 핸가, 홀트아동복지재단에 취재를 하러 갔었다. 그곳 홍보실장을 만나 국내의 입양으로 야기되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열심히 듣고 메모한 후 챙겨 올 수 있을 만큼 자료도 챙겨왔다. 들어오면서 얼핏 본 액자 속의 말이 그럴듯해 돌아 나가면서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1. 어린이에게는 비평보다는 본보기가 필요하다.
2.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조금씩 닮았다.
3. 우리를 부자지간으로 맺어주는 것은 혈육이 아니라 애정이다.

그럴듯해 입 속으로 두어 번 읊어서 아예 외워 버렸다. 그리곤 돌아와 입양에 얽힌 얘기를 내 딴에는 감동적으로 써 보냈고 그리곤 만족한 상태에서 곧 잊어버렸다.
내 작은 불행에는 도드라지게 상처를 잘 받고 그것 때문에 오래오래 아파하면서, 어쩌면 타인의 것이라 해서 이런 불행을 한낱 자료로만 이용하고 끝났던가.
하나님은 한 여자의 이런 ‘차가운 심장’이 몹시 딱하셨던 것 같다.

마산에서 근로 청소년을 취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예기치 않게 잘 아는 촬영팀을 만났다. 그들은 군산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고 낯선 지방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도 편승했다. 어쩌면 지금껏 한 번도 가 보지 않았을 군산을 그런 인연으로 가게 되었고, 그들을 따라 난생처음 영아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말도 듣고, 신문에서 읽고, 내가 가진 자료로 익히 알고도 남는 영아원.

나는 건들건들 기웃기웃 건성 둘러보고 다니며 ‘아, 춥다. 발 시렵다. 여긴 취사장이구나. 여긴 세탁실이구나. 지저분해, 대야도 아무 데나 팽개쳐 있고……’ 이 따위 생각이나 하면서 촬영팀의 촬영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며 있었다. 훈훈한 히터가 있는 자동차로 빨리 가고 싶었다. 그러나 촬영은 쉬 끝나지 않았다.

작은 강당에 대여섯 살 되는 아이들이 좌악 모여 앉아 두 손에 과자를 든 채 반짝 반짝……노래하고 NG가 나면 또 반짝반짝……노래하고 과자를 손에 든 채 먹어 보지도 못하고 두어 시간을 그렇게 반짝반짝…… 시키는 대로 노래하고 있었다.

방송국 녹화장의 그런 모습에 익혀진 나는 이 장면에서도 별 느낌 없이 그냥 작업이 늦어진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기다림이 무료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닫힌 방문 하나를 별 생각없이 열어 보았다.

방 안은 캄캄해서 얼핏 빈방처럼 느껴졌다. 방문을 도로 닫으려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보모 처녀가 달려왔다. 그러고는 촬영팀의 일원에게 베푸는 친절로, “보시겠어요?” 하고는 찰칵 스위치를 올렸다.

순간 나는 호흡이 딱 멎어 버렸다.
무엇인지 미처 분별할 수 없이 수십 개의 총알이 내 가슴을 관통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총알은 ㄷ 자로 누워 있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였다.
한 돌에서 두 돌 미만인 어린 아이들이 바깥의 반짝반짝……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자야만 하는 역할을 감당하느라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이다.
한 아이가 들릴 듯 말 듯 칭얼대는 소리를 냈다. 보모가 얼른 이불 속으로 손을 넣었다.
“오줌 쌌구나. 일어나.”
아이는 30개월 군복무를 끝낸 제대병처럼 발딱 일어났다. 그리고 보모가 내주는 내의를 갈아입는데 부모의 움직임에 한 치의 틀림도 없이 어쩌면 그리도 손발이 착착 맞는지.
그렇게 다 입자 이물을 들추고 요도 없는 맨 바닥으로 쏙 들어가 정자세로 착 누웠다.
아이를 길러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겠지만 한 돌짜리 아이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짧은 순간에 본 그 아이의 행동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서러워서 나도 모르게 이불 속의 아이를 끌어내 와락 부둥켜안고 말았다. 
아이는 무조건하고 내 가슴에 깊이깊이 안겨 들어왔다. 

아, 이 조그맣고 따듯한 아이.
도대채 얘야, 넌 왜 여기있니?

난 몰랐다. 네가 여기 이렇게 캄캄한 방에 숨소리도 내지 않고 누워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보모의 말 없는 움직임에 일사분란하게 보조를 맞춰 주는 한 살짜리 아이가 있는 줄 난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구나.
아이를 안고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쿨렁쿨렁 치밀어 올라오는 울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내 가슴은 철퇴를 맞고서야 눈을 떴고 그때까지 잘 알고 있던 입양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몰라 다시 물었다.

내 가슴에 안긴 아이는 내 아이였다.

그러나 나는 결손가정에 해당되는 편모였고, 입양규칙은 아이를 내 가슴에서 떼어 놓았다. 그날 밤 서울로 돌아가면서 나는 혼자 약속했다. 내 곧 다시 가마. 널 찾아 다시 가마. 결코 너를 그곳에 있게 하지는 않으마.

날씨가 추워지면 제일 먼저 가슴을 후비면서 생각나는 아이들.
낯선 가슴을 따뜻하게 열고 들어오던 그 작은 몸뚱이가 이 겨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를 괴롭힌다.
타인이 자기 자신의 일부란 사실을 따뜻하게 일러 주고 깨우쳐 준 그 작은 하나님에게 아무 보답도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는 나는 버려진 모든 아이 앞에 심히 부끄럽다.
실행에 옮기지 않는 앎이 무슨 소용 있으며 실천 없는 눈물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방 안이 추워서 난로의 불을 지피면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내 귀에 속삭인다.

- 이제 너는 따뜻하느냐. 이 따뜻함을 내가 너에게 주었으니 너도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언제 오세요? 언제 오세요?
(홍성사 '이들을 보소서' 중)




 황선명

2019-01-08 20:05

실천없는 눈물,
행함없는 믿음
난 빈껍대기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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