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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한국교회 첫 전국 전도대회

  • hansewan
  • 조회 : 4122
  • 2016.03.30 오후 05:36

한국교회 첫 전국 전도 대회 '백만 명 구원가'

전도에 힘을 더한 '백만 명 구령 운동' 주제가에 얽힌 이야기
옥성득

1909~1910년 백만 명 구령 운동을 할 때 불렀던 '백만 명 구원가' 한글 가사를 손승용(孫承鏞, 1855∼1928) 목사가 수첩에 붓글씨로 쓴 창가집 안에서 발굴했다. 당시 불렀던 하크니스(Robert Harkness) 작사 작곡의 영어 가사와 곡 'A Million Souls for Jesus!'는 필자가 발굴하여 <한반도 대부흥>(홍성사) 372쪽에 소개했다. 한글 가사는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난주 인천 영화여자정보학교 이성진 선생이 보내 준 손 목사 유품 창가집 수첩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손 목사 자료는 6.25 전쟁 때 모두 소실되어 그의 생애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인천시가 2006년 인천 인물 100인을 선정할 때 그를 포함시키면서, 또 이성진 선생의 연구로 어느 정도 생애의 윤곽이 드러났다.

손승용은 누구인가

손승용은 1899년 <독립신문> 기자 겸 부주필로 활동했다. 곧 그는 한국 최초의 민간 기자였다. 존스의 초빙으로 1900~1903년 인천 영화학교 교사로 봉직하게 되었다. 정동제일교회에서 제물포감리교회로 교적을 옮기고 권사로 봉사했다.



▲ 손승용 목사.

손승용은 1903년 11월 황해도 연압읍 본처전도사로 임명되었고, 신학반에서 공부했다. 1905년 제물포교회 본처전도사로 파송을 받았고, 영화학교도 다시 책임을 지게 되었다. 1905년 5월에는 학교 제1회 졸업식을 거행했다(참고 링크).

집사목사 안수 후 1907년 7월 강화읍 잠두교회를 맡았다. 1908년에는 조원시 목사 등과 함께 잠두의숙을 교회 부설 제일합일남학교로 다시 세웠다. 이어 제일합일여학교를 설립하고 두 학교의 교장을 맡았다.

손 목사는 합일 남녀 학교 외에도 5년간 교회 부설 매일 학교를 확산하며 적극적인 교육 애국 계몽 운동에 전력했다. 그가 강화에 왔을 때 5개였던 매일 학교는 3년 만에 17개로 늘어났다. 교동에서도 2개에서 13개로 늘었다.

<손승용 창가집>

따라서 이 <손승용 창가집>은 그가 영화학교와 잠두교회와 합일학교에 재직할 때인 1900~1913년 어간에 학생들과 교인들에게 가르친 창가와 특별 찬송들이었다. 창가집은 표지와 첫 몇 페이지가 소실되고 없어서 정확한 제목은 알 수 없다. 손동옥 씨가 창가집이라고 알고 있으므로, <손승용 창가집>이라 부르겠다.

현존하는 첫 페이지는 낱장으로 떨어져 있고 전체는 20여 페이지이다. 창가 제3장 3절부터 뒷부분이 모두 남아 있다. 제4장은 精神歌(정신가) (一)이며, 이후 붓글씨로 제49장 居鄕歌(거향가)까지 한 글씨로 정리되어 있다. 이어서 펜글씨로 8곡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손승용 창가집>에는 전체 57곡의 친필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현재 애국가로 알려진 '애국가' 가사가 윤치호의 <찬미가>에는 '아래아'가 없는 단순 철자법으로 되어 있지만, <손승용 창가집>에는 옛 맞춤법으로 적혀 있다. 또한 다른 노래들도 모두 옛 맞춤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첫 30여 장은 1905~1910년 어간에 영화학교 남학생들이 불렀을 애국가, 무궁화가, 소년 모험 맹진가, 대한혼가, 국기가, 병식 행보가, 부모 사덕가, 수절가, 면학가, 전진가, 용진가, 행보가, 학진가, 학도가, 결의가, 독립가, 학생가, 희망가, 세계 지리가, 망향가, 자유가, 학교가, 대한군가, 구세군가 등이다.

이어 성탄절 노래 가사 4곡이 수록되어 있다. 크리스마스 캐롤 대신 학생들이 불렀던 초기 성탄절 노래 같다. 펜글씨로 추가한 노래들은 1910년대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성탄절 노래들과 성경 제목을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성경 기억'가와 내용을 요약한 '성경가'가 수록되어 있다.

대부흥 운동 불길 이어가고자…'백만 명 구원가'



▲ <손승용 창가집> 제48장 '백만 명 구원가'.

<손승용 창가집>에 대한 종합 분석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일단 제48장인 '백만 명 구원가'만 보자. 전국적인 전도 운동인 백만 명 구령 운동이 1909년 말에 시작되었다. 이 운동을 위해 주제곡, 포스터, <마가복음 특별판> 70만 부가 제작되었다.

이 창가집은 1910년이나 1911년에 감리회의 <찬미가>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때까지 학교나 교회에서 널리 불렀던 창가와 특별 찬송들을 모아 기록한 것으로 추측된다. 손승용 목사가 친필로 쓴 '백만 명 구원가'를 현대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1. 삼천여 리 강산 우리 대한국에 / 죄에 빠진 동포 가련하구나
그리스도 왕의 봉명(奉命) 사신된 자 /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후렴) 나아갑시다 나아갑시다 /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2. 사면진(四面陣)을 벌인 원수 마귀 손에 / 사로잡힌 동포 구원해 보세
우리 대장 예수 선봉 되었으니 /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3. 우리 형제자매 일심 단체하여 / 성신 보검 들고 힘써 싸우세
퇴보하지 말고 용맹 전진하며 /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4. 열심으로 나가 전도하는 이들 / 천당 영광 중에 면류관 쓰고
할렐루야 찬송 기뻐할 것이니 /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이 가사는 하크니스가 만든 원곡 가사와 전혀 다르다. 가사를 한국어로 번역해 부르기가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특히 원곡의 후렴과 창가집의 후렴은 전혀 다르다. 하크니스 악보에 한글 가사를 필자가 나름대로 붙이면 다음과 같게 된다. (곡의 반주는 홍성사가 만든 VOD에 있다.)



▲ 1909년 하크니스 작곡 악보에 필자가 손승용의 필사본 가사를 넣었다. 후렴 마지막 소절에서 악보에 맞게 "백만 명"을 한 번 더 넣었다.

이 노래는 알렉산더가 1909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와 평양신학교 운동장에 여학생과 여성들을 모아 놓고 찬양 집회를 열었을 때, 백만 명 구령 운동 주제가도 함께 불렀을 것이다.



▲ 알렉산더 부흥 성가사의 집회 모습. 평양, 1909년.

100만 명의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1907~1908년 대부흥 운동에 이어 그 불길을 이어가고자 첫 전국 전도 운동, 첫 민족 복음화 운동이 1909년 말부터 1년간 전개되었다. 고난의 일제강점기를 대비하는 영적 능력을 준비한 성령 운동이었다. 한국 인구 약 1,300만, 개신교 선교사 300명, 한국 교인 20만 명일 때 전개한 전국 복음화 운동이었다.

이 '백만 명 구원가'는 전국 교회와 가정과 학교에서 불렸고, 전도 운동에 능력을 더했다. 주제가를 넣은 집회용 찬양집 팸플릿도 보급되었다.

마지막 애국 계몽 운동인 백만 명 구령 운동은 단순한 전도 운동이 아니라, 교회 설립 운동, 교육 운동, 계몽 운동이 결합된 구국 운동이었다. 비록 의병 전쟁처럼 물리적으로 일제에 저항하지는 않았지만, 신앙과 교육을 통해 미래를 책임질 '십자가 군병'을 모집하는 운동이었다.

1910년 당시 "사면진을 벌인 원수 마귀 손에 사로잡힌 동포를 구원하자"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형제자매 일심 단체하여 성신 보검 들고 힘써 싸우세"라고 했을 때 그것에 단순히 영적인 의미만 있었을까? 선교 학교에서 목총을 메고 군가처럼 이 '백만 명 구원가'를 부르며 용맹 전진한 학생들을 볼 때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개신교는 백만 명 구령 운동 이후 한국 사회에서 천도교와 더불어 거의 유일한 항일 종교 조직체로 자리 잡고 한국 민족의 독립과 근대화를 책임지는 단체가 되었다. 따라서 일제는 무단통치를 시행하면서 교회와 항일 독립운동의 고리를 끊기 위해, 1911년 백오인사건을 날조하고 교회 통제에 나서게 된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합방으로 급성장 추세는 꺾였으며, 일제의 기독교 박해 정책으로 저성장과 감소의 시대(1912~1919년)로 접어들었다. 나라가 망하면 교회라는 배가 뜰 물이 요동친다. 사회가 흔들리면 그 파도에 교회는 심하게 흔들린다. 교회가 민족 상황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 한국을 책임질 교인 100만 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100만 명 민주꾼, 100만 명 통일꾼, 100만 명 선교꾼을 위해 오늘 다시금 힘차게 불러 본다.
"나아갑시다. 나아갑시다.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옥성득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석좌 부교수(한국기독교)이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2002년부터 UCLA에서 한국근대사와 한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 <한반도 대부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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