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바뀐 것은, 유가족뿐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바뀐 것은, 유가족뿐입니다 | ||||||||||||||||||||||||||||||||||||||||||
[305호 메멘토 0416] ‘2014.4.16.’을 두 번째 맞는 세월호 엄마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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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후 해를 두 번 넘긴다. 700일이 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
기억교실, “참사 이후에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토론이 일어날 줄 알았어요. 우리 교육은, 경제는, 정치는, 문화는, 도대체 그동안 얼마나 돈의 논리에 경도되어 살아왔는지, 이제라도 돌이켜 가야 할 방향은 어딘지! 이야기하는 장들이 생길 줄 알았죠. 그런데 여전히 그대로예요.” 예은 엄마를 비롯한 세월호 엄마들은 특히 관할 교육청의 무관심한 태도에 기가 막혔다. 상처가 컸다. 시민들도 2년 째 매고 다니는 노란리본 하나를 교육청 직원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웠고, 교육청 1층 분향소 역시 너무 ‘깔끔’했다. “여기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피켓 들고 서 있으면서 노란리본 단 사람 한 명 보기 힘들어요. 차에 붙이는 스티커도 거의 못 봤고요. 1층에 분향소가 마련돼 있는데, 거기는 향 피운 흔적이 없어요. 마침 교육청 직원과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어서 ‘이 일에 책임을 느끼기는 하느냐’ 물었어요. 그랬더니 ‘공무원들은 노란리본 같은 거 못하고 다니게 압박이 들어온다’고 대놓고 말하더라고요. 그래도 여긴 다른 지역도 아니고 경기도교육청이잖아요, 단원고가 있는.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결의 같은 게 과연 이들에게 있었을까 싶어요. 오히려 빨리 잊히고 지워졌으면 하는 분위기 같아요.” 예은 엄마는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시행하려는 이들이 준비해놓았다는 ‘세월호 교육’에 대해 “아이러니”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세월호 교육’에서 ‘기억교실’과 학부모는 거의 배제 대상이었다. 단원고 희생자 부모들이 끈질기게 ‘기억교실 존치’에 매달리는 이유는 ‘옳은 일’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한국사회가 참사의 ‘진짜 원인’들을 잊지 않게 하는 사회적 공간이니까. 재학생 학부모와 유가족들은 기억교실을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3월 이전하기로 잠정 합의했으나, ‘지난 2년간의 경험상’ 기억교실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부모들은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언론은 재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불편을 겪는 상황이 마치 단원고 희생자 부모들 때문인 것처럼 초점을 맞췄다. “여론이 나쁘면 가족들 고통은 훨씬 커지고, 하루하루가 고통이에요. 우리가 여론에 못 이겨 포기하기를 바랐나봅니다. ‘자식 잡아먹은 부모’라는 소리까지 들은 마당에 여론에 밀려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해야 하는 일이니까 욕이 쏟아져도 달게 먹으면서 계속 가는 거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고, 그 해결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가 전보다 진보할 가능성이 과연 있을까? 지금 이대로라면 답은 뻔해 보인다. (세월호 참사 직후 한국사회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북유럽으로 이민 관심이 증폭했었다.) 그동안 재발되어 온 참사를 통해 경험했고, 세월호 참사 조사 과정을 통해 재학습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세월호 유가족은 진실이 묻히도록 그대로 둘 수 없다. 포기할 수 없다. 예은 엄마를 비롯한 세월호 엄마들에게 이번 일은 결코 “확률을 따져서 할 일이 아니다.”
교회, “나는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는 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꽉 차 있는데, 교회 사람들은 관심이 전혀 없으니까, 매주 구역모임에서 할 얘기가 없었어요. 내 솔직한 감정들을 얘기하면 ‘저 얘기 또 하네…’ 하는 분위기였고, 나를 비롯한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에 전혀 관심이 없는 거예요. 10년 넘게 친했던 사람들하고의 관계라서 더 서운하고 상처를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나왔어요.” 특히 목회자에 대한 실망이 더없이 컸다. 절망에 가깝다. “ ‘요즘 얼마나 힘드세요’ 하고 짧은 위로라도 건네야 맞지 않나요? 내가 교회 옮긴다는 얘기가 구역장님 통해서 목사님 귀에 들어갔는데, (나한테는 전화도 안 하고) 교회 나간 지 얼마 안 된 남편한테 전화로 한다는 말이, ‘권사님이 자식 일도 아니고 조카 일에 그 정도이실 줄 몰랐다’였습니다. 그 말에 남편도 뚜껑이 열렸어요. 내가 다닌 교회의 민낯을 본 거죠. 그게 (10년 넘게 봐 온) 목사님과 마지막이었습니다. 밥이라도 한 끼 같이 먹으면서 웃으며 떠나려 했었지만, 그것도 못하고 그 주에 바로 교회를 안 나갔어요.” “새로 다니는 교회도 큰 차이는 없지만, 애초 기대 없이 나가서 상처도 안 받아요. 50년을 교회 안의 하나님만 보고 살았는데, 이젠 교회 밖에 분명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어요. 구제나 선교헌금도 이젠 교회로 안 합니다. 오히려 교회 바깥에 하나님께서 돕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성현 엄마는 작년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이는 도리어 기자에게 질문을 건넸다. “교회들은 세월호 가족들이 이 싸움을 계속 하는 걸 어떻게 바라보나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 “세월호 참사 이후 예배드릴 곳을 잃은 유가족들이 적지 않아요. 그들이 다니던 교회의 태반이 공동기도 시간에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중보 이야기를 전혀 들을 수 없습니다. 삭발한 어머님 중에는 ‘삭발한 채 교회 아이들 교사를 할 수가 있느냐’는 소리가 도는 통에 교회를 나오게 됐습니다. 아이들보다도 어른들이 문제지요. 2반 (허)다윤이는 아직 애가 배에서 나오지도 못했는데도(미수습), 교회에서 분향소로 와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어요. 최악입니다. 같은 교회 다니던 (박)시찬이 부모님도 그런 목사님 태도에 놀라서 나왔어요. 이런 분들이 많아서 우리끼리 주일예배도 함께 시작하고, 목요기도회도 생기고, 같이 성경 읽는 모임도 생겼습니다.” 예은 엄마가 시작한 모임이지만 갈수록 다른 엄마들이 그 열심을 앞지르고 있다. 순영 엄마, 지성 엄마, 찬이네 부모님 등…. 특별히 예진 엄마는 교회 열심히 다니던 예진이를 만나기 위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배가 고프다. 성경 말씀을 읽을수록 단지 역사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똑같은 상황”인 것을 체감한다. 그리고 하나님 뜻을 찾는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다음에 많은 이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고 또한 믿었지만, 그 전에 자신의 죽음이 먼저 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 뜻을 택한 거죠. 예수님도 마지막 순간까지 잔을 옮겨 달라 간청하셨지만, 그럼에도 죽음을 앞에 두고 하나님 뜻을 선택하셨잖아요.” 예은 엄마는 “불의한 진실이 드러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그저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솔직히 우리 싸움이 이기리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기억교실을 지키는 일부터 크게는 진상규명까지도요. 하지만 불의한 진실이 드러나는 게 하나님 뜻이니까 계속 할 겁니다. 저희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워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특히 신앙을 가진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스스로, 예수님이 말씀하고 가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를 저희를 통해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신학도 재정립했다. 참사 초기 하나님에 대해 마음이 떠났던 다른 분들도 지금은 많이 돌아왔단다. 성경을 함께 읽다 보면 말씀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아프고 약한 자들의 편이라는 확신이 있다. 여전히 교회를 불신하고 실망도 계속 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확신은 참사 이전보다도 오히려 공고해졌다.” “유가족들 중에 어떤 분이 해방신학 책을 읽고서 ‘하나님이 우릴 해방시켜준다는 게 이거냐, 이게 무슨 해방이냐’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이 우릴 해방하신다는 게 우리한테 문을 활짝 열어주신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문을 열도록 문고리라도 잡고 돌리게 하시는 것 같다’고 답했죠. 길은 이미 예수님이 보여주셨고, 우리가 그 길을 걷기를 결단하는 일만 남은 거라고요. 그래서 끝이 오기 전에 내가 죽을 수도 있고, 살아생전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 길을 가는 것이 곧 영생을 믿는 믿음이라고요. 영생이란 죽은 후에 호의호식 하는 게 아니라 내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의 뜻이 이어진다는 확신으로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간다는 의미에서 영생인 거죠. 제 신학은 예은이를 보내고 이렇게 정리가 됐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싸울 일은 없어요.”
세월호 엄마들,
지성 엄마가 말을 꺼낸다. |
hansewan
2016-04-08 15:42
예전에는 해마다 4월이 되면 4.19의 희생정신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4.16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04명이 생각납니다.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 과정을 놓고 이런 저런 말들이 서로 다르고 의견도 다를수 있지만, 선진국이란 인명을 소중히 여기며, 억울한 일을 끝까지 밝혀주어 마음을 위로해야 선진국이라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적인 가치관은 사회 구석 구석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믿음을 세워주고 희망을 주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달라지길 기도드립니다. 2년전 팽목항을 방문했을 때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