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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코필드 -깨어진 가정들을 위한 공동체

  • hansewan
  • 조회 : 2268
  • 2018.06.29 오후 01:13

 

  • 제임스 코필드

  • 깨어진 가정들을 위한 공동체

주일 오전 10 30, 기념비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마지는 교회에 가기를 원하지만, 참으로 번거로움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장애가 있는 그녀의 아들은 아침에는 다루기 더 힘들다. 그녀는 11시 대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교회에서 하는 주일 아침 성경공부에 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녀를 둘 만한 곳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완벽한 머리치장과 완벽한 가정을 갖춘 숙녀들의 시선에 너무 많이 신경 쓴다. 어떤 사람들은 동정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은 짜증난 것 같으며, 또 다른 사람들은 친절하다. 만약 그녀가 성경공부에 전혀 참석하지 않는 것을 어느 누가 알아차리면, 그녀는 수치와 놀라움을 느낀다. 그녀의 남편은 수년 전에 떠났다. (장애아들이 있는 가정의 이혼율은 80퍼센트가 넘는다). 그녀는 필요성을 느낄 경우에 재빨리 떠날 수 있도록 보통 맨 뒷자리에 앉는다.

 

마지의 가정은 우리 공동체의 수많은 가정들을 대표한다. 피곤한 얼굴로 가득 찬 수천의 스토리들이 있다. 그들은 어려운 전환점에 있고, 트라우마와 비극을 겪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교회에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지 않거나,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의 자녀들은 어려움이 너무 많고, 그들의 가정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혼란하다. 그들은 너무 많은 실패를 하고, 너무 많은 상처가 있어서 교회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너무나 평온하게 사는 것 같은데,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역기능적이며, 다른 유형의 가정이 어떻게 예배하며 속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제한된 자원밖에 없는 신자들의 몸(교회)이 지역 교회의 문으로 들어올 수 있는 독특한 상황들 모두를 다루기 시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문화를 포스트모던, 후기-기독교, 그리고 후기-가정 문화로 묘사한다. 그러므로 교회에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제한된 자원과 심각한 결핍을 지닌 자들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단계는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다.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의 비전이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의도는 좋지만 열매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프로그램을 시도해왔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 이 새로운 비전 혹은 마음가짐이란 무엇인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2:17). 교회는 평온한 사람들이나 의로운 사람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만나는 역기능적인 가정들을 위한 곳이다. 우리는 잘못된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제기해야 할 질문은, “‘힘든 문제로 씨름하는 가정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런 가정들을 포함시키지 않고 어떻게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목적에 신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이다. 교회는 깨어진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최근 연구에서, 88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감이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경험에 뿌리 박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형제로,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칭한다. 이렇게 가정에서 쓰는 호칭들은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치유하는 것이 교회의 주된 역할임을 시사한다. 삶의 변화에는 세 가지 주요 유형이 있다. , 예측 가능한 삶의 변화, 불행한 삶의 변화, 그리고 파국적인 삶의 변화가 있다. 어느 교회나 교인들의 예측 가능한 삶의 변화가 어떨 것인지를 현실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것은 아동기, 청소년기, 대학, 결혼 준비, 육아 등이다. 불행한 삶의 변화는 나이, 사회-경제적인 지위, 문화적인 규범, 그리고 구성원들의 분포 등에 따라, 특정 교회 안에서 보다 명확히 규정될 수 있다. 이들은 재혼으로 인한 혼합 가정, 홀로 자녀를 키우는 경우, 중독, 장애 자녀들, 장애 어른들, 직업 상실/경제적인 어려움, 정신병 등과 같은 주제들을 포함할 수 있다. 파국적인 삶의 변화는 각 교회에서 훨씬 더 구체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변화로는 허리케인, 경제 불황, 자연 재해, 심각한 범죄, 또는 테러 등을 포함할 것이다.

 

지역 교회는 회중과 회중이 섬기는 지역 공동체들에 대한 비공식적이며 정직한 여론 조사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복음의 능력이 어떻게 개인적인 삶의 변화 시기에 여러 개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을 교육하며, 구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초청, 정보 제공, 포함시키기 등이다.

 

초청

 

사람들은 자신이 환영받고 있을 때를 안다. 깨어진 사람들과 권리가 박탈된 사람들을 위해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힘은 목사와 더불어 시작된다. 교회는 프로그램을 잘 따르지 않지만, 비전을 가진 지도자를 따를 것이다. 강단에서, 설교는 회중석을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실제적 삶의 고투와 관계된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필요는 예측 가능하다. 그들의 질문은 그들의 자녀들의 수업에 대한 것이든 안전에 대한 것이든, 재빨리 그리고 흔쾌히 답변되어야 한다. “단지 자신을 나타내기만 해도 인생의 70퍼센트는 성공이다라는 오래된 말이 있지만, 설교자로서의 이 70퍼센트는 사람들로 하여금 환영받고 소속되어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비록 그들과 교회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과 자매들이라는 사실밖에 없다 할지라도.

 

나는 최근에 장애 아동들의 부모들을 위한 결혼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교회에서는 바운스 하우스(속에다 팽팽하게 공기를 채워 그 위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 기구-역자 주), 페이스 페인팅, 여러 가지 활동, 아이들을 위한 다과, 그리고 일대일 관리 등을 제공했다. 참석한 부모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세미나 기간에 눈물을 흘렸는데, 그 이유는 강의가 훌륭했기 때문도 아니고, 반드시 서로에 대해 동질감으로 인한 기쁨을 너무 크게 느꼈기 때문도 아니라, 한 교회 또는 그 일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적극적으로 그들을 환영하고 그들을 도우려고 한 것에 대해 몹시 놀랐기 때문이다. 복음의 매혹적인 초청은, 그 어떤 문제도, 그 어떤 상황도, 그 어떤 환경도 하나님의 구속 사역 너머에 있지 않다고 하는 충격적인 믿음을 보여준다. 표현되지 않고 인정받지도 못하는 슬픔의 무게에 짓눌린 많은 사람들은 이 복음의 진리가 그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많은 교회 공동체에서, 고투를 벌이는 모습은 영적인 연약함의 표시로 간주된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가서 문제가 전혀 없는 척 가장한다. 알코올 중독으로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한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교회에 설교만 들으러 갑니다. 그리고 진짜 도움을 얻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AA(미국의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역자 주)에 갑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닌 척 가장하라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교회는 깨어진 사람들이 가서 환영받아야 할 곳이다.

 

정보 제공

 

우리가 정보의 시대에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도전들 가운데 하나는, 이용가능한 데이터의 양은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그것이 무분별하게 제시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손가락 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주제와 관련된 수백만의 데이터와 더불어, 교회는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하며 분별력을 가지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성경적이고, 유용하고, 건전한 관련 정보가 모든 지원 영역에서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 소그룹, 성경공부반, 지원 그룹 그리고 상담 사역 등의 모든 사역이 어려운 삶의 변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정보를 제공한다. 교회는 모든 주제들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특정한 고투를 위한 치유 자원을 성경적으로 모색하는 데 헌신하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개별적인 사역들을 인도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다루는 특정한 삶의 변화 영역을 위한 열정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열정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하나님이 주신 권면을 통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기 위해 주님의 인도를 진지하게 구하는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를 섬기기 위해 선택한 자료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용하는 개인이나 그룹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정한 그룹들에게 어떤 이슈들이 해당되는지 우리에게 말해주는 예측가능한 인구통계학적인 데이터가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가난의 위험성이 가장 큰 그룹은 홀어머니와 자녀들이 사는 가정이다. 그러므로 홀어머니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스트레스와 염려들이 그런 가정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개입하고자 하는 헌신을 수반하지 않는 정보는 제한된 가치밖에 없다.

 

포함시키기

 

공동체와 헌신은 포함시키기의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일차적인 공동체는 당면한 이슈를 다루는 특정한 소그룹의 구성원들로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그 구성원이 교회라는 보다 큰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갈라디아서 6장에서는 겸손하게 짐을 서로 지라고 권면하며, 몇 구절 뒤에는 자신을 잘 살펴야 한다는 말씀이 나온다.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그룹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 교회는 반드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의 문제에 깊이 관여해야 하며,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어떤 프로젝트의 대상인 것처럼 전혀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교회에 자연스럽게 접붙여져야 한다.

 

이것은 선교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좋은 리더십이란 단지 어떤 그룹에 다가가는 것만이 아니라 그 그룹을 선교의 일원으로 초청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교회는 배워왔다. 효과적인 선교사들은 토착민 그룹들이 그들 자신의 종족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그들을 훈련시킴으로써 일을 수월하게 한다.

 

포함시키기의 헌신 부분을 축소해서 말할 수는 없다. 교회는 죽음, 결혼, 단기 병원 방문 등과 같은 단기간의 위기들을 다루는 데는 최고인 것 같다. 그러나 장기적인 질병, 오랫동안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장애아들, 고질적인 불화와 가난으로 만신창이가 된 가정들과 같은 오래 계속되는 전투에 항상 잘 대처하는 것 같진 않다.

 

교회가 엉망인 장소가 되는 것이 교회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헌신이다. 나는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는 잠언 14 4절 말씀을 항상 기억한다. 만약 우리가 원한다면, 우리의 교회들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유지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할 경우 많은 수확은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진정한 복음 사역을 할 수 있으며, 이럴 경우에 우리의 교회들은 눈물과 땀과 슬픔으로 지저분해지고 얼룩질 것이다.

 

마지와 그녀의 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몸이 필요하며, 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더욱 잘 반영하기 위해서는, 마지 같은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제작: 매일배움, 번역: 김장복

이 글의 원문은 리고니어 선교회의 웹사이트 www.ligonier.org에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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